고수의 생각법 - 조훈현

2016. 1. 22. 01:33




고수의 생각법. 남자들은 보통 고수라고 하면 각 문파의 장문인이나 후계자 등의 무림고수를 떠올릴 것이다. 온갖 검법과 무예들을 섭렵하고 결국 무림계의 일인자가 되어 무림을 접수하던가, 혼란한 무림의 평화를 가져오던가.. 여튼 무협지에서 1인자임은 확실하다.

이 책의 저자인 조훈현은 바둑계의 1인자로서 상당한 기간동안 군림하였으니, 누가봐도 고수라는데 이의를 가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생'이라는 웹툰을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시즌1에 나오는 바둑 대국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사실 난 바둑을 모르는 문외한이다. 책 서두에 보면 이분은 세상일은 모르고 바둑만 안다고 쓰여져 있다. 책을 보는 것이 저자와 독자와의 대면이라고 한다고 하면, 바둑은 하나도 모르는 사람과 바둑만 아는 사람이 얼굴을 맞대고 있는 좀 웃긴 상황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바둑은 재미도 없거니와 룰도 모르고 지루하고 뭐 그렇게 느꼈었다. 하지만 바둑을 좋아하는 아버지를 통해 바둑이 온갖 수싸움이 난무하는 것이라는 것 쯤은 알고 있다. 그래서 처음에 이 책의 제목을 보았을때는 생각하는 스킬에 대한 방법들을 이야기 하는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감에 책을 들쳐보게 되었다. 사실 다른 사람의 말을 들으면 팔랑귀 처럼 아 그렇구나 하고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는 나로서는, 다른 사람들이 어떠한 사고의 순서나 체계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엔 사고법에 관한 책들도 많지 않은가. 물론 하나도 보진 않았지만.....


이 책은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딱히 특정한 사고의 방법을 이야기 해 주진 않는다. 만일 누군가가 '생각법'이라는 단어를 보고 나처럼 스킬을 가르쳐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면, 이 책은 선택지에서 놓아야 한다. 이 책은 오히려 인생에 대한 조언을 주는 책에 가깝다. 저자가 이제껏 바둑을 통해 살아오면서 겪은 일들을 가지고 인생을 이야기 한다. 바둑만 아는 사람이 이 세상 수많은 사람들의 각자 다른 인생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하지만 책을보면서 책에 담겨진 수들이 보편적인 인생들을 관통하는 모습을 보며, 그 작은 바둑판이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계와 같다고 느껴졌다. 그것을 보면서 웹툰 '미생'의 주인공이 바둑과 자신의 생활을 연관지우는 것이 억지는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둑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고 해서 책이 지루할까 걱정도 되었지만, 의외로 책은 짧은 호흡을 가져간다. 짤막짤막한 에피소드들을 엮어서 전체적인 이야기를 해 나가는데, 그래서 쉽게 쉽게 읽히면서 지루하지도 않다. 바둑에 대한 이론적인 내용이 아닌 바둑을 통해 느끼는 것들을 이야기 하기에 바둑을 몰라도 충분히 이해 가능하다.


책을 읽으면서 모든 에피소드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특히 마음에 남아있는것은 복기에 대한 것이다. 바둑 시합이 끝난 후 다시 그 시합을 리플레이 하는 것인데, 이것이 패자에게 얼마나 쓰라린 것인지를 이야기 한다. 인생으로 보면 어떠한 일에 실패하는 것과 동일한 것을테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실패(?)한 일들이나 안좋았던 기억들에 대한 반응은 크게 세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잊어버리는 것이고 하나는 그 기억에 매몰되는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그 경험을 양분으로 삼아 발전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번째 처럼 생각하려 하지만 실재로는 첫번째, 아니면 두번째의 방법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바둑 기사들은 대부분 세번째의 방법을 택하는것 같은데 그것이 바로 복기라는 것 때문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단순히 지난 시합을 떠올리는것에 그치지 않고 토론까지 하기도 한다니 참으로 강심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실패를 떠올리며 반성을 하는 것만 해도 쓰라릴텐데 말이다. 그리고 조금 더 감동(?)을 받은 것은 이긴 사람도 자신이 어떠한 수를 썼는지 가르쳐 준다고 하니, 그건 더욱 대단한것 같다. 사회에서는 경쟁심리로 인해 자신의 노하우를 남에게 잘 알려주지 않는 경우가 허다한데 말이다.


두번째로 마음에 남는것은 예전의 경기들을 보며 어떻게 하면 이기는 수를 가져갈 수 있는지 끊임없이 연구한다는 부분이었다. 사실 예전의 경기라고 한다면 이미 결과가 나와있는 것이고 답이 다 나와있는 것들인데. 이것으로 부터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려 노력한다는 것이 새롭게 다가왔다. 사실 우리는 빨리 답을 찾기를 원한다. 그래서 결과가 나와있는 것들을 그 결과들을 보기 원한다. 수학 문제가 안풀리면 답안지를 찾듯이 말이다. 하지만 혼자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생각하고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며, 깊은 사고 없이 빨리빨리 정답찾기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나의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예전에 어디서 보았던 서울대출신 과외 선생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고등학교 수준에서 좀 어려운 문제를 물었는데 그 선생이 자기도 모르는 문제였었다고 한다. 그런데 답안지를 보는게 아니라 혼자서 골똘히 30분간 노트에 이런저런 공식들을 써가며 풀더니 답을 내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때는 역시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뭔가 다르구나 라고만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가져야할 기본적인 자세가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물론 빨리 답을 찾아야 할 때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빨리 답찾기에만 급급한 태도를 가지는 것과 빨리 답을 찾아야 할 상황이 있는것은 분명 다를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상황들에 놓이며 그때마다 어떠한 선택을 해야할지 기로에 놓이게 된다. 그러한 순간에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선택을 해야할 지 이 책이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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